와인 설명서에서 본 이 말, 무슨 뜻일까? — Unfiltered (무여과)

와인 설명서를 보다 보면 종종 이렇게 적혀 있는 문장을 만난다.

“Unfiltered.” 무여과
“Unfined.” 무청징

어딘가 더 자연스럽고, 더 손대지 않은 와인처럼 느껴지는 표현. 하지만 이 말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왜 어떤 와인에서는 굳이 강조되는지는 의외로 잘 설명되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Unfiltered ・ Unfined를 와인 설명서 맥락 안에서 어떤 공정을 생략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무엇을 전제로 하는지를 정리해본다.

Filtered(여과)・Fined(청징) | 무엇을 했다는 뜻일까?

와인 양조에서 Filtering(여과)과 Fining(청징)은 발효와 숙성이 끝난 뒤, 와인을 보다 안정적인 상태로 만들기 위한 공정이다.

  • Fining(청징): 단백질, 효모 찌꺼기, 불안정한 성분을 결합·침전시켜 제거하는 과정
  • Filtering(여과): 미세한 입자나 잔여 효모를 물리적으로 걸러내는 과정

이 두 과정의 목적은 와인을 더 맑게더 안정적으로, 그리고 병입 후 변화 가능성을 줄이기 위함이다.

Unfiltered(무여과) ・ Unfined(무청징) | 무엇을 뜻할까?

Unfined는 청징 공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뜻이고, Unfiltered는 여과 과정을 생략했거나 최소화했다는 뜻이다. 즉, 이 표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선언이라기보다, 와인을 정리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개입을 줄였다는 설명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선택이 와인메이킹의 기본 과정을 대체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발효, 숙성, 블렌딩 같은 핵심 과정은 이미 충분히 진행된 상태에서, 마무리 방식에 대한 판단이 달라졌을 뿐이다.

왜 굳이 여과나 청징을 하지 않을까?

Unfiltered ・ Unfined가 선택되는 이유는 와인메이커 마다 다르다.

  • 와인의 질감과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 향의 미세한 층위를 보존하기 위해
  • 이미 충분히 안정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특히 숙성이 길었거나, 자연 침전이 충분히 이루어진 와인의 경우 추가적인 정리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는 생산자도 많다. 즉, 이 선택은 현재 와인의 상태에 대한 판단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고, 의도적으로 원하는 스타일을 얻기 위해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 샤르도네(Chardonnay)에서는 Unfiltered가 단순한 ‘생략’이 아니라 스타일을 만드는 선택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맑고 반듯한 완성”보다 질감의 밀도(texture), 미세한 입자감, 숙성 향의 층위를 남겨 와인이 조금 더 입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들고 싶을 때다.

이 흐름은 단순히 ‘내추럴’과 동일한 결이라기보다, 산화·숙성·말로락틱(MLF) 등 이미 충분히 스타일이 형성된 와인을 마지막에 과하게 정리하지 않는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어떤 와인에서는 Unfiltered가 “덜 만든 와인”이 아니라, 마무리에서 질감의 결을 남기려는 미학적 선택으로 읽히기도 한다.

더 좋은 와인일까?

이 지점에서 가장 흔한 오해가 등장한다. 와인을 더 고급스럽게 만들거나, 반드시 더 풍미가 풍부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다. 하지만 이는 결과를 보장하는 조건은 아니다.

여과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항상 더 깊은 맛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청징을 생략했다고 해서 균형이 더 좋아진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반대로, 여과와 청징이 적절히 이루어진 와인 역시 충분히 복합적이고 안정적인 경우가 많다.

Unfiltered Unfined는 모든 지역, 모든 품종에서 고르게 쓰이는 표현은 아니다. 특정 스타일과 조건에서 이 선택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경향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를 이해하면 이 표현이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라 와인의 성격을 가늠하는 하나의 힌트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다만 어떤 생산자들에게는 이 선택이 향과 질감의 결을 남기기 위한 ‘의도적인 마무리’로 작동하기도 하며, 그래서 설명서에서 굳이 강조되는 경우가 있다.

부르고뉴(Burgundy) | 피노 누아, 샤르도네

부르고뉴에서는 특히 피노 누아(Pinot Noir)와 샤르도네(Chardonnay)에서 Unfined 혹은 Unfiltered가 비교적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이 지역의 와인들은

  • 섬세한 향의 층위
  • 질감의 미묘한 변화
  • 과도한 정리로 사라질 수 있는 뉘앙스

가 중요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부 생산자들은 이미 충분한 침전과 숙성이 이루어졌다고 판단되면, 청징이나 여과를 최소화해 질감과 향의 결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선택을 한다.

이 경우 와인은 향이 조금 더 천천히 열리거나, 입안에서 질감이 더 입체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다만, 항상 더 맑거나 친절한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론 밸리 & 남부 프랑스 | 시라, 그르나슈

론 밸리, 특히 남부 론이나 랑그독·루시용 같은 지역에서는 시라(Syrah)그르나슈(Grenache) 기반 와인에서 종종 등장한다.

이 스타일의 와인들은

  • 과실 밀도
  • 향신료, 허브 계열의 풍미
  • 비교적 넉넉한 바디감

을 갖는 경우가 많아, 과도한 여과가 질감을 지나치게 가볍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와인의 무게감과 입안에서의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여과를 줄이는 선택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 경우, 맛은 더 둔중하거나 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동시에 다소 거칠게 느껴질 여지도 함께 남는다.

이탈리아 & 스페인 | 산지오베제, 템프라니요

이탈리아의 산지오베제(Sangiovese), 스페인의 템프라니요(Tempranillo)에서도 Unfiltered / Unfined 표기가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 지역과 품종에서는 와인의 구조와 산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청징 과정에서 구조감이 약해지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려는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 산도가 더 또렷하게 느껴지거나
  • 질감이 조금 더 직선적으로 드러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내추럴 와인 & 최소 개입 스타일

Unfiltered / Unfined는 내추럴 와인(Natural Wine)이나 최소 개입(minimal intervention)을 지향하는 생산자들에게서도 자주 등장한다.

이 경우에는

  • 공정 최소화
  • 병입 전 개입 축소
  • 변화 가능성을 감수하는 태도

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 영역에서는 스타일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이 표현만으로 와인의 성격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른 정보들과 함께 읽는 것이 필수적이다.

맛과 향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경향’

Unfiltered / Unfined 와인에서 자주 언급되는 감각적 차이는 다음과 같다.

  • 향이 즉각적으로 튀어나오기보다 시간이 지나며 열리는 경우
  • 질감이 더 둔하거나, 반대로 더 입자가 살아 있는 느낌
  • 병입 후 침전물 발생 가능성

Portfolio

Where Unfiltered / Unfined Often Appears

  • Burgundy — Pinot Noir, Chardonnay
    섬세한 향의 층위와 질감을 과도한 정리 없이 유지하려는 선택
  • Rhône Valley — Syrah, Grenache
    과실 밀도와 입안에서의 무게감을 보존하기 위한 여과 최소화
  • Italy — Sangiovese, Nebbiolo
    산도와 구조감을 흐리지 않기 위한 마무리 방식
  • Spain — Tempranillo
    숙성 과정에서 형성된 골격을 그대로 남기려는 의도
  • California — Single Vineyard, Small-lot Wines
    이미 안정적이라 판단된 와인을 있는 그대로 병입하려는 선택
  • Natural / Minimal Intervention — Various
    공정 개입을 줄이고 발효·숙성의 결과를 그대로 반영하려는 태도

이 정리는 결과의 우열을 구분하기 위한 표가 아니라, Unfiltered / Unfined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참고용이다.

하지만 이 역시 항상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특징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차이가 공정을 생략한 결과일 뿐, 의도 자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마실 때 무엇을 기대하면 될까?

Unfiltered / Unfined 와인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날 수 있다.

  • 병 바닥에 침전물이 남아 있을 수 있고
  • 개봉 직후 향이 다소 닫혀 있다가 시간이 지나며 풀리는 경우도 있다
  • 질감이 조금 더 둔하거나, 반대로 더 밀도 있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는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특징들은 와인메이커의 의도된 선택의 결과라는 점이다.

Closing Reflection

정리하지 않았다는 선택

Unfiltered와 Unfined는 와인을 덜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충분하다고 판단했다는 선택에 가깝다.

모든 와인이 같은 방식으로 마무리될 필요는 없고, 모든 공정이 항상 더해져야 할 이유도 없다. 이 표현은 우월함이 아니라, 마무리의 방향을 설명하는 언어다.

🍇 A quiet pursuit of joy – through w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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